역사/한국역사

한국사 INDEX 3 - 설명편

memo79257 2026. 5. 18. 02:04

한국사 INDEX 3

 

우왕 창왕 공양

 

육룡이 나르샤 / 용의 눈물

 

쌍화점에서 이어서 - 길태미가 홍륜을 죽이고 삼한 제일검이 된다. /공민왕 시해.

https://www.youtube.com/watch?v=h1ruq0u8xXI

 

 이때가 몽골 말기라서, 영웅문 3편이랑 시대가 겹친다. 그래서, 장삼풍이 나온다. (가상)

 이 시기는 외적이 많이 출몰했는데, 원나라 말기에 홍건적이 일어났고, 조선반도에 쳐들어왔는데, 최영과 이성계가 토벌함. 

 이때 이름을 날린 이성계, 최영, 박위, 최무선, 정지, 정세운이 있다. 

 일본은 무로마치 시대로, 정국이 혼란스러워, 해적이 난립하여 우리나라까지 온것이고, 중국도 원나라 말기에 혼란스러워, 반란군 홍건적이 일어나 우리나라까지 온 것이었다. 

 

 조선건국에는 이방원때 왕권의 기틀이 다져졌다. 그리고, 그 설계자는 정도전이다. 

 뭐, 중간에 왕자들의 난이 또 일어났지만, 어린 후궁에 눈이멀어 어린 왕자에게 왕을 물려주려던 이성계와 대립하여, 실력자들을 휘하에 둔 이방원은 어린 왕자들을 죽여버리고 왕이된다. 

 그리고 왕권을 내놓기 싫어지만, 가뭄이 10년차에 이르르면서 민심이 너무 흉해서, 아들에게 물려준다.

 그게 세종대왕이다.

 

뿌리깊은 나무 / 영화 천문

 세종때에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서는데, 정도전이 세운 유교의 나라. 모델인 명나라 사대를 명분으로, 왕권에 도전하는 이들과 갈등을 그렸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보이지만, 왕명이라고 꾸뻑 죽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고려시대 정몽주가 이끄는 조선 사람파와 정도전의 신진 사대부들의 세력은 유학자들로, 지방세력과도 이어져있다. 

 이들이 왕권을 견재하는 방법은 바로, 유학을 근거로, 사대를 명분을 삼는 것이고, 그것으로 자신의 이권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때문에, 그 정리를 이방원이 칼로 싹다 정리하여 왕권을 많이 확립한 상태로 세종에게 승계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세종이 죽고, 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으나, 문종은 병이 있어, 오래살지 못할거 같았다. 

 아들 단종에게 왕위를 어려서 물려주는게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동생 수양대군은 왕위를 항상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관상이다.

 

* 무기들.

https://www.youtube.com/watch?v=EaC7HlVIwRY

 

 

 

 

 

 

 

 

 

 영화 관상 / 드라마 한명회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 여기서부터, 외척세상이 됨. / 수양대군이 만든건 외척을 들인 것임.

   외척이라는 것은 결국 가족사이고, 가족간 권력다툼임.

   형,동생,아들,며느리 상관없이 - 외척소속가문들의 싸움임.

그리고, 극중에 항상 나오는 한명회는 바로, 수양대군의 책사이다. 

한명회는 쿠테타를 계획하고 성공시켰고, 단종을 결국 죽게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딸들을 왕에게 시집보내어, 왕들의 장인어른이 된다. 

물론, 관상에 나온대로, 나중에 관에서 꺼내져서, 해골의 목을 자르게 된다. 

 세조가 수양대군이다. 

 한명회는 후에 강력한 외척이 되는데, 

 첫째딸은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의 아들과 혼인한다. 윤반은 당시 명문가 파평 윤씨 가문이었다. 

 둘째딸은 신숙주와 사돈을 맺게 된다. 신숙주 장남 영의정 신주와 결혼한다.

 셋째딸은 세조의 첫째아들(의경세자)이 단종의 저주로 인해 일찍 죽게 되고, 둘쨰아들 예종이 왕이 되는데, 시집을 보내게 된다. 

  마찬가지로 저주로 인한것인지, 17세에 요절한다. 물론, 예종도 단명한다. 

 그리고, 결국 세조의 손자 성종에게 넷째딸 공혜왕후를 시집보내지만, 역시 거의 단명한다. 후사가 없다. 

 

 * 간단히 요약하면, 수양대군 아들들이 전부 요절하고, 시집보낸 한명회 딸들도 다 요절함.  - 단종의 저주가 아닐까.

   그리고, 세조의 손자인 성종을 12살에 왕위에 올려놓고(한명회), 수양대군 부인(성종의 할머니)이 수렴첨정 함. (7년)

   그리고, 다시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또 수렴첨정을 함. 

   이 과정에서 인수대비와 폐비윤씨가 갈등 ( 권력싸움. 인수대비 청주한씨가문과 폐비윤씨 함안윤씨가문)

   폐비윤씨를 사약으로 인수대비가 죽임.

   그래서, 연산군이 사람이 없어서 왕이되어, 어머니 과거를 알고는 인수대비를 죽임.(한명회 일파 등 관련자 모두를 죽임)

 

 

 

 

 

 

 

 

 

왕과 비 - 연산군

전반부: 세조의 왕위 찬탈 - 계유정난 - 세조가 쿠테타를 일으켜 세종의 세력을 싹 죽인 사건 ( 한명회 위에 내용과 중복)

중반부: 인수대비의 등장과 성종의 치세

세조 사후 예종이 요절하자, 수양대군의 맏며느리였던 인수대비(소혜왕후)가 한명회와 결탁하여 자신의 어린 아들 자산군(성종)을 왕위에 올립니다. 이후 성종의 왕비인 폐비 윤씨의 비극적인 사사 사건이 중점적으로 다뤄집니다.  ( 한명회 위에 내용과 중복)

후반부: 연산군의 폭정과 파멸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연산군이 어머니(폐비 윤씨)의 죽음의 내막을 알게 되면서 흑화하는 과정입니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조정과 왕실을 피바람으로 물들이고, 결국 할머니인 인수대비와 머리로 들이받는 극단적인 갈등 끝에 중종반정으로 폐위되며 막을 내립니다

 

왕의 남자 / 간신/ 장녹수  - 연산군이 엄마의 복수를 하다.

1504년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 - 어머니 복수'

1. 후궁들에 대한 잔혹한 처형 (엄귀인·정귀인 사건)

연산군은 어머니를 모함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버지 성종의 후궁, 엄 숙의(엄귀인)정 소용(정귀인)을 첫 번째 표적으로

불효의 강요: 후궁들을 대궐 뜰로 끌어내 직접 잔인하게 폭행했습니다. 더 나아가 정귀인의 친아들들(안양군, 봉안군)을 강제로 불러내 "자신들의 어미를 직접 몽둥이로 치게" 만드는 패륜적인 복수를 감행

시신 모독: 처참하게 살해당한 후궁들의 시신은 격분한 연산군에 의해 참혹하게 훼손

 

2. 할머니 인수대비와의 정면충돌 (머리 박치기 사건

어머니의 죽음을 주도한 가장 큰 배후가 할머니인 인수대왕대비라는 것을 안 연산군은 칼을 든 채 인수대비의 침소로 들이닥쳤습니다

육체적·정신적 충격: 연산군은 병상에 누워있던 인수대비에게 격렬하게 따지며 머리로 인수대비의 가슴(또는 이마)을 들이받는 전대미문의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인수대비의 서거: 이미 노환으로 위독했던 인수대비는 손자의 광기 어린 폭력과 불효에 큰 충격을 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화병으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3. 조정 조정 신하들에 대한 대숙청과 사약

연산군의 칼날은 과거 폐비 윤씨의 폐위와 사사에 찬성하거나 묵인했던 조정 대신들에게로

윤필상, 이세좌 등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수많은 원로 대신들과 선비들이 줄줄이 잡혀 와 형장을 당하거나 사약

이로 인해 연산군의 권력을 견제하던 조정의 훈구파와 사림파 세력 전체가 완전히 초토화

 

4. 이미 죽은 자들에게 내린 형벌 (부관참시와 쇄골표풍) [1]

부관참시(剖棺斬屍): 무덤을 파헤쳐 관을 부수고, 시신의 목을 베는 형벌입니다. 폐비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한명회, 정창손 등의 무덤이 파헤쳐져 시신이 토막

쇄골표풍(碎骨飄風): 뼈를 갈아서 바람에 날려 보내는 형벌로,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복수 방식

 

물론,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가 멀쩡하고 폐비윤씨가 죽은 것은 결국 공혜왕후의 정치적 승리이고, 즉, 한명회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명회를 무덤에서 꺼내서, 목을 친다.

 

흥청망청 장녹수. 

동해번쩍 홍길동, 드라마 역적.

 

 

 

 

 

 

연산군이 개차반 짓을 하자, 사람들이 연산군의 배다른 동생 중종을 데리고, 쿠테타를 일으킴. - 중종반정

 

 

여인천하 - 중종과 부인 문현왕후(윤씨) 2째부인 장경왕후 // 중종반정.

   단경왕후 신씨는 연산군 사건에 관계된 신수근의 딸이라서, 7일만에 폐위시킴. 

   2째부인 장경왕후는 12대 인종을 낳지만, 인종이 단명함

   3째부인 문정왕후가 13대 왕 명종을 낳음.

 

문정왕후 윤씨 — 남동생의 첩 정난정이 수하역활

              중종의 첩 경빈 박씨가 아들 복성군을 왕시켜보려고 문정왕후랑 싸우다 날라감

 중종이 57세로 죽을때, 명종이 12살임. 문정왕후가 수렴첨정함.
 

을사사화(1545년)의 주도(장경왕후 제거): 중종이 승하한 후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남동생 윤원형을 앞장세워 반대파 세력(인종의 외척인 윤임 일파, 일명 대윤)을 피로 숙청한 사건이 바로 을사사화입니다

 

 

 

 

 

 

 

임꺽정 (명종)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첨정과 하나뿐인 아들 요절(12살)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화병으로 34세로 비교적 일찍 죽음.

 안으로는 임꺽정의 난과 밖으로는 을묘왜변(일본 왜적 침입)이 있었음. 

 이 시대 유명한 것으로 황진이, 화담선생 서경덕, 박연폭포가 있고,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음. 

 

 * 무기들

https://www.youtube.com/watch?v=MXqi3wdhzCc

 

 

 

 

 

 

 

 

 

 

 

 

 

 

 

 

 

 

 

 

 

명랑 - (선조)

   명종의 아들이 요절하고, 명종도 일찍 죽어서, 먼 친척인 선조가 왕이 됨. 

       이 때를 시작으로, 붕당정치가 시작됨. 

          사림 세력이 중앙 정계를 장악한 후, 인사권(이조전랑)을 둘러싼 갈등과 정치·학문적 성향의 차이로 인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며 시작

          분화: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쪼개졌고, 광해군 시절에는 북인이 정권을 잡기도

정여립 역모 사건(기축옥사, 1589년)은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 때 발생한 사건으로, 동인 출신의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는 고변으로 인해 동인 세력 1,000여 명이 참혹하게 숙청당한 조선 시대 최대의 정치적 옥사

 

   일본이 통일하고 조선을 공격한다 (임진왜란)

   선조가 도망가고, 광해를 남긴다. 광해가 전장에서 활약한다.

선조시대 왕이 별로였지만, 인물들이 많음.

 - 이순신, 권율, 곽재우, 류성룡, 정철, 오성과 한음(이항복,이덕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한석봉, 허준 

 

 *일본은 선조때, 통일함 - 신장의 야망. => 조선침략

   중국 명나라는 임진왜란 도와주다 망함. => 청나라 등장.

  

 

 

 

왕이 된 남자 (광해)

광해군(조선 제15대 국왕)이 수많은 형제와 정적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 속에서 보여준 탁월한 리더십과 공로 때문

준비되지 않은 세자: 본래 선조는 첫째 아들인 임해군을 왕위 계승자로 생각했으나, 성격이 난폭하고 행실이 나빠 세자로 책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둘째인 광해군 역시 후궁(공빈 김씨)의 몸에서 태어난 서자였기에 왕위 계승 서열이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버림받은 조정의 대리인: 선조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조정을 둘로 나누는 '분조'를 단행했습니다. 선조 자신은 명나라 국경 근처인 의주로 피난을 갔고, 18세의 어린 세자였던 광해군에게는 남겨진 조정의 절반을 맡겨 조선 본토에 남겨두었습니다.

민심을 사로잡은 세자: 광해군은 목숨을 걸고 평안도, 강원도, 황해도 등 전국의 전쟁터를 직접 누볐습니다. 의병들을 격려하고, 군량을 모았으며, 백성들을 위로하는 등 사실상 전시 총사령관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과 조정 대신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형 임해군은 전쟁 중 함경도로 피난을 갔다가 왜군(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에도 행패를 부리는 등 왕세자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광해군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의 정비(인목왕후)가 적장자인 영창대군을 낳았습니다. 서자 콤플렉스가 있던 선조는 내심 적통인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고, 이에 따라 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극심한 신변의 위협과 견제를 받았습니다.

선조의 급서: 하지만 영창대군이 겨우 3세였던 1608년, 선조가 후사 문제를 명확히 매듭짓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승하했습니다.

 

선조가 죽자 조정은 큰 혼란에 빠졌지만, 당시 3세에 불과한 아기(영창대군)를 왕으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왕후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전쟁 영웅이자 조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광해군에게 국왕의 도장을 넘겨주며, 광해군이 최종적으로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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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 말하면, 1타 장자 원종이 개차반이고, 임진왜란때, 병신짓으로 걍 버려짐. 2타 영창대군이 선조가 죽을때, 3살임. 

  그래서, 영창대군 어머니 인목왕후가 광해군에게 걍 왕위를 줌.

(광해군이 임진왜란때 공이 혁혁함. 남았던 신하가 광해편임. 백성들이 지지함)

  - 그러나, 전후복구에 대규모 토목공사로 원성을 삼. 

  - 대동법으로 세금제 개편 (세금을 쌀로 통일함)

  - 명나라가 지고, 금(청)나라가 뜨면서, 중립 외교 : 단, 금이 명을 치면서, 원군을 요청함. 1만을 파병함. 장수 강홍립이 져서 투항하여, 청나라와 전쟁을 막음. (밀지)

 왕권강화를 위한 피의 숙청 (폐모살제) : 서자이기 때문에, 정통성부족으로, 왕권에 덤비려는 자가 많음.

  - 형 임해군을 역모로 처형

 - 계축옥사 : 영창대군 지지자를 역모로 처벌. : 영창대군도 강화도 유배한뒤 죽음. 그의 어머니 인목대비도 폐위시킴

 

 인조반정 => 결국, 인목대비와 영창을 죽인 댓가로 반대파가 생기고, 명나라 지지세력들이 명을 배신했다는 명분으로 쿠테타를 일으킴. 즉, 광해군이 불안해 하는게 맞는 거임. 실리를 추구하였지만, 명분을 잃게 됨.

 

 광해군을 버리고, 먼 조카인 인조를 데려와 쿠테타를 함. '

 

 ** 붕당정치 

  세조와 한명회가 만든 외척정치와 수렴청점으로 나라가 망가지면서, 대가 끊긴다. 

   그래서, 먼 조카인 선조를 데려오는 정치학파들이 힘을 얻게 되면서, 이들은 더이상 외척질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선조에게 붕당정치를 하자고 한다.

   문제는, 권력싸움이 외척에서 당으로 옮겼을 뿐이고, 그것은 그저 명분싸움일 뿐이었다. (실리가 없다)

   세조때, 사림이 득세하지만, 외척에 눌리고, 선조가 되면서,

   사림은 동인(이황-신진사림)과 서인(이이-기득권)으로 나뉜다. 이들은 치열하게 서로 싸웠는데, 인사권을 두고 싸움

   이권타툼이 사상과 학파의 다툼에서도 일어남. (학문으로도 다투게 됨)

   임진왜란 전에, 동인은 전쟁이 없을 것을, 서인은 전쟁준비를 주장함. - 국난때도 싸움. 

   전쟁이 터지면서, 서인은 전쟁에 미온적이지만, 동인은 책임감을 느끼고, 의병으로 많이 활동함.

   동인은 서인에 대해서 온건적인 남인과 적대적인 북인으로 나뉨 

   

 

 

 

 

 

  동인은 서인에 대한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면서, 남인과 북인으로 갈리게 됨.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성공하여 정권을 잡음.

      - 기축옥사 : 동인 정여립 모반으로 묶어서 동인들을 숙청함. (힘이 약해짐)

   임진왜란때, 전쟁준비를 하자고 했던게 서인들이다.  - 선조때

       선조는 서인들의 득세를 견제하고 싶어서, 동인들 말을 들어줌. 

   동인들이 정쟁으로 전쟁준비를 거짓으로 말해서, 미안해서, 전쟁에서 대거 의병으로 나감. 그래서, 북인쪽에서 의병장들이 배출됨

   북인이 정권을 잡음.

  인진왜란때, 의병장을 배출하고 활약한게 북인들이다. (남인 나가리) - 광해군때.

  광해를 지지한 대북세력과 영창을 지지한 소북. -> 소북은 나가리 됨. - 광해군때

  인목왕후를 폐비하는데 찬성한 대북, 반대한 중북.

 

  요, 상황에서.  서인들이 인조를 데리고 쿠테타를 성공함. (서인들 재집권 성공)

 

 

 

 

 

 

 

최종병기활 -> 남한산성 -> 올빼미 / 추노 / 꽃들의 전쟁 (인조)

 인조는 서인들의 힘으로 왕이 되었으므로, 정치적 동맹관계를 형성한다. 

 서인들은 친명파이므로, 청나라를 적대시 한다. (친명배금) -> 정묘호란,병자호란

 서인이 득세하면서, 열세였던 남인도 도움을 받아 기생하며 공존체제를 제한적으로 유지함. 

 

인조는 정치적 정통성이 약했기에, 폭정과 숙청을 일삼고, 민생을 파탄시킴.

 - 인조반정 공신들이 전횡을 일삼고, 백성들을 수탈함. - 김류,이귀,이괄 등 임. 매관매직, 민간인들 사유재산을 강탈함. 민란이 폭주.

 - 이괄의 난 : 이괄이 득세하지만, 나중에 역모로 몰리자 난을 일으킴. 

      => 이후에, 맘에 안들면 아무나 역모로 모는 풍조가 생김. 

 꽃들의 전쟁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은 조선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왕의 사랑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후궁 소용 조씨(귀인 조씨)의 삶과 궁중 암투를 그린 대하사극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욕을 겪은 인조는 극도의 불안감과 광기에 사로잡힌 나약한 왕으로 묘사

소용 조씨(장렬왕후) 의 가스라이팅: 조씨는 인조의 이러한 심리적 취약점을 파악하고 비위를 맞추며 왕의 총애를 독점

                                            // 올빼미에 나옴.

소현세자의 귀국: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는 서구 문물을 수용하고 조선을 개혁하려 함 (올빼미)

이간질과 독살: 이를 눈엣가시로 여긴 소용 조씨는 소현세자가 인조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끊임없이 모함합니다. 결국 소용 조씨의 음모로 소현세자는 의문의 독살을 당하게 됩니다.

  • 강빈(독살당한 소현세자의 부인)의 비극: 세자가 죽은 후에도 조씨는 세자빈 강씨(강빈)에게 역모 누명을 씌워 사약을 받게 하고, 세자의 자녀들까지 유배 보내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 즉, 붕당정치쪽으로 외척을 몰아내기는 개뿔, 여전히 왕실문제는 난리였다. ( 다른 나라도 다를건 없다 )

 

 * 결론, 그래서, 남의 껏을 빼앗고 해쳐먹는 짓거리를 이제는 왕족과 외척, 그리고 붕당세도가 까지 모두 개새끼가 됨.

 

 데려와서 올려진 왕은 정치에 휩슬린다.

 명을 지지한 세력들이 올렸기때문에, 청나라와 대립하게 되고, 청나라는 침략하게 된다. - 최종병기 활

  왜란을 겪었음에도, 서양식 신문물로 무장한 전쟁에 미흡하여 학살당한다. 

  왕은 항복한다. (병자호란) - 남한산성

  청나라는 인조의 아들을 볼모로 데려간다.

  신식문물을 배워온 아들이 복귀하지만,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죽인다 - 올빼미.

  죽인 아들의 아들. 즉, 인조의 손자를 데리고 도망다닌다. - 추노.

 

 

 

 

 

 

 

 

 

 

 

 (효종 - 소현세자의 동생 봉림대군)  

친청파 숙청과 사림 등용 (즉위 직후)

김자점 일파 숙청: 인조 말기 권세를 누리던 대표적인 친청파 권신 김자점과 그 일파를 유배

산림(山林) 학자 등용: 청나라에 반대하는 척화파였던 송시열, 송준길, 김상헌 등 재야의 유학자들을 대거 조정으로 불러

북벌론(北伐論) 추진과 군제 개편

어영청과 금군 확대: 청나라를 정벌하여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겠다는 목표 아래, 왕의 친위대인 어영청의 규모를 대폭 늘리고 군사 훈련을 강화

남한산성 정비 및 성곽 개축: 만약의 전쟁에 대비하여 변방의 요새를 정비하고 수도 방어 체계정비

나선 정벌 (1654년, 1658년)

조선 조총수의 위력 과시: 북벌을 위해 키워둔 조선의 정예 조총 부대가 뜻밖에 청나라의 요청으로 러시아(나선) 군대를 격퇴하는 데 동원

결과: 제1차(변급), 제2차(신류)에 걸친 정벌에서 조선의 조총 부대는 흑룡강 일대까지 진출해 큰 승리를 거두며 국제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증명

하멜 일행의 표착 (1653년)

네덜란드인들의 제주도 표류: 네덜란드 상인 핸드릭 하멜 일행이 탄 배가 제주도에 난파하여 조선에 체류

무기 개량에 활용: 효종은 이들을 한양으로 압송하여 훈련도감에 배치한 뒤, 서양식 조총(화승총) 제작 기술과 화약 제조법을 전수받아 군사력 증강에 활용

대동법(大東法)의 충청도·전라도 확대 시행

 

효종의 갑작스러운 서거와 의혹 (1659년) [1]

어이없는 의료 사고: 북벌의 꿈을 펼치던 효종은 얼굴에 난 종기(독종)를 치료받던 중, 어의 신가귀가 침을 잘못 놓아 혈관을 건드리는 바람에 과다출혈로 급서

역사적 파장: 건장했던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향년 41세)으로 북벌 정책은 중단되었고, 뒤이어 즉위한 현종 대에 왕실 상복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당쟁인 예송논쟁이 촉발되는 계기

 

전통 무기의 개량: 각궁 (角弓)과 편전 (片箭) - 추노에서 나옴.

조선 군대의 주력 무기: 임진왜란 이후 도입된 조총은 효종 대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군의 핵심 화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 추노

 

 

 

 

 

 

 

 

장희빈 (현종)  / 마의.

현종(재위 1659~1674년) 시기는 대외적인 전쟁은 없었으나,

내부적으로 왕실의 정통성을 둘러싼 치열한 예송논쟁

기후 변화로 인한 사상 최악의 대기근이 발생했던 격동의 시기

 

1. 제1차 예송논쟁 : 기해예송 (1659년)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조대비)가 상복을 몇 년 동안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정면충돌한 사건

       결과: 현종은 서인의 손을 들어주어 1년상으로 확정되었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

2. 제2차 예송논쟁 : 갑인예송 (1674년)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가 승하하자, 다시 한번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2차전

      결과: 이번에는 현종이 남인의 손을 들어주며 1년상으로 확정

경신대기근 (1670~1671년)

조선 역사상 최악의 재앙: 전 세계적인 소빙하기 기후 변화로 인해 조선 전역에 가뭄, 홍수, 우박, 냉해, 지진, 전염병이 한꺼번에 닥쳤다

조선 인구의 약 10~20%에 달하는 수십만에서 백만 명 이상의 백성이 굶어 죽거나 병사

사수삼당(四手三唐) 사건과 하멜의 탈출 (1666년)

 - 조선은 하멜일행들을 동물취급하고 혹사시키고 재대로 먹이지도 않아 대부분 죽었고, 하멜 혼자 도망쳐서, 하멜 표류기에 쌍욕을 박음. 하멜은 하멜 표류기에서 조선을 외부인을 억류하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나라'로 묘사

 

동철(銅鐵) 활자 주조: 인쇄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금속활자인 현종실록자(오대자) 등을 주조하여 서적 간행에 힘썼다.

 

 

조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삶을 살다 간 여인이자, 한국 사극 역사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인물이 바로 장희빈(장옥정)

당대 최고의 권력가였던 왕 숙종(현종의 아들)과 조정의 두 세력(서인남인)이 벌인 피비린내 나는 정치 게임

 

 

 

 

 

 

 

 

 

 

 

 

 

 

 

 

 

 

 

 

장희빈/ 동이 (숙종)

 숙종의 부인인 희빈장씨(장희빈)는 경종의 어머니고,  숙빈 최씨(동이)는 다음왕인 영조의 어머니이다.

 그러니까, 장희빈 포스터에 한쪽은 장희빈, 한쪽은 동이? 

장희빈(희빈 장씨) 사건은 조선 제19대 왕 숙종 시대에 발생한 궁중 암투와 권력 투쟁

왕비 폐위와 복위(환국), 무고(저주) 사건이 얽혀 붕당 정치의 격변

결국 장희빈이 사사(賜死)되며 마무리

 

기사환국 (1689년): 장희빈이 아들(훗날 경종)을 낳자 숙종은 이를 원자로 삼고 세자로 책봉하려 했습니다. 이를 반대하던 서인 세력이 숙청되고 남인이 집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인 출신인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갑술환국 (1694년): 숙종의 마음이 숙빈 최씨(동이)에게로 기울고, 폐위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장희빈을 지지하던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장희빈은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귀

저주 사건과 최후 (1701년): 인현왕후가 병으로 사망한 후, 숙빈 최씨(동이)의 고변으로 장희빈이 취선당 북쪽에 신당을 차려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사실이 발각

사약을 받고 사사

 

* 그니까,. 원래부인이 있었는데 딸만있고, 젊은 애(장희빈)가 와서, 아들도 낳으니 그걸로 왕을 정하려고 하니까, 신하들이 반대해서 쓸어버리고, 원래부인도 같이 쓸려나감. 그런데, 더 젊은 것(동이)이 와서, 생각해보니 원래부인이 가여워서, 복귀시키니, 앞번 젊은 애(장희빈)가 쓸려나감. 그래서, 앞번 젊은 애(장희빈)가 억울해서 저주하니까, 막내(동이)가 꼰지름.

 결국 한효주하고, 지진희가 문제인 것.

 

숙종 시대는 공리공론에 치우친 성리학에 반대하며, 백성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초기 실학'이 싹트고 발전한 중요한 전환기

 

 

 

 

(경종-장희빈 아들)

  • 대포(불랑기포) 주조: 군기시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포탄과 화약을 개발하고 대포를 주조하여 국방력을 높였습니다.

  신임사화 (신축환국 & 임인옥사, 1721~1722년)  - 목숨을 건 핏빛 당쟁.

신축환국 (1721년): 소론의 김일경 등이 노론의 대리청정 요구를 '왕권을 침해하는 역모'로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에 경종이 노론 세력을 조정에서 대거 쫓아내고 소론으로 정권을 교체

임인옥사 (1722년): 남인 출신인 목호룡이 "노론이 칼(대급수), 독약(소급수), 가짜 왕명(평지수)이라는 세 가지 방법(삼급수)으로 경종을 암살하려 했다"고 고변(고발)

 

결과: 이 사건으로 노론의 영수였던 노론 4대신(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을 포함해 수십 명이 사형당하고 100여 명이 유배를 가는 핏빛 숙청

 

경종의 갑작스러운 붕어와 독살설 (1724년)

 

 

 

 

 

 

 

 

 

사도  (영조 - 동이 아들 ) 

 

영조의 지나친 기대: 영조는 40세가 넘어 늦게 얻은 귀한 아들(사도세자)을 조선을 이끌 완벽한 후계자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세자가 두 살 때부터 엄격한 제왕학 교육

불통과 질책: 사도세자가 성장하면서 무예와 예술에 관심을 보이고 유학 공부를 소홀히 하자, 영조는 신하들 앞에서도 세자를 혹독하게 질책하고 망신

세자의 정신 질환: 아버지의 극심한 압박과 공포 속에서 사도세자는 정신적 질환(울화병, 의대증 등)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입지 못해 궁녀를 죽이거나, 극심한 공포심에 궁궐 안에서 폭력적인 행동

 

정치적 대립: 노론과 소론의 대리전

당쟁의 희생양: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지만 당파 싸움을 없애기 위해 탕평책을 썼습니다. 반면 사도세자는 성장하면서 노론 세력을 비판하고 소론 및 남인 성향의 인물들과 가까이 지냈다

노론의 모함: 위기감을 느낀 노론 세력은 사도세자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비행을 부풀려 영조에게 지속적으로 보고하며 부자 사이를 더욱 이간질

 

임오화변 (1762년): 뒤주에 갇힌 세자

사도세자 시호: 영조는 아들이 죽은 후 비통해하며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를 써서 사도세자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조의 즉위: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죄인의 아들로 왕위에 오를 수 없어, 영조의 명령에 따라 효장세자(영조의 먼저 죽은 아들)의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

정조는 즉위 당일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하며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인좌의 난.

이인좌의 난(李麟佐ㅡ亂)은 조선 영조 4년(1728년) 3월 조선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가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내전

 

 

 

 

 

 

 

 

 

역린 (정조 - 사도세자 아들)

 



역린. 

내용: 정조 즉위 1년, 왕의 침전까지 자객이 침투했던 실제 암살 미수 사건인 '정유역변'

 

영원한 제국

내용: 이인화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왕권 강화를 추진하는 정조와 신권 정치를 주장하는 노론 세력 간의 팽팽한 정치적 대립과 의문의 살인 사건을 미스터리 형식

 

《옷소매 붉은 끝동》은 2021년 MBC에서 방영된 17부작 사극 드라마로,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이산)와 의빈 성씨(성덕임)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를 그린 작품

 

조선명탐정

내용: 정조 16년, 관료들의 공납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정조의 밀명을 받은 명탐정의 활약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입니다. 극 중 정조는 명탐정에게 비밀 수사를 지시하는 든든한 조력자로 등장

 

《한성별곡-正(정)》은 2007년 KBS 2TV에서 방영된 8부작 퓨전 미스터리 사극 드라마입니다. 조선 후기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세 젊은이의 이야기

 

《바람의 화원》은 2008년 SBS에서 방영된 20부작 미스터리 사극 드라마로, 조선 후기 천재 화가인 신윤복과 김홍도의 삶과 예술을 그렸습니다

 

《무사 백동수》는 2011년 SBS에서 방영된 29부작 퓨전 무협 사극 드라마로, 조선 최고 협객 백동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청춘들의 성장과 액션을 그렸습니다. 백동수(白東脩, 1743~1816)는 조선 후기 정조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무인이자, 신분 한계를 극복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지식인 . 뛰어난 무예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박지원, 이덕무 등 당대 최고의 실학자들과 깊이 교류한 '문무를 겸비한 인물. 뒤늦은 무과 급제: 1771년(영조 47년) 29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했으나, 서얼에게 인색했던 당시 조정의 분위기 때문에 오랫동안 관직을 얻지 못하고 야인으로 생활

정조의 발탁과 호위 무사 (장용영) - 1776년 즉위한 정조는 규장각을 세우고 능력 중심의 인재를 등용. 백동수 역시 정조의 눈에 띄어 국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초관(군관)으로 발탁

정조의 두터운 신임: 그는 정조의 최측근에서 국왕을 호위하며 개혁 정치를 무력으로 뒷받침하는 핵심 인물로 활약

백동수의 가장 큰 역사적 업적은 조선 최고의 무예 교본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한 것

 

정조의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종기의 일종인 등창이었으나, 사망 직후부터 정순왕후와 반대파에 의한 독살설이 끊임없이 제기

 

 

《신해박해(辛亥迫害)》는 1791년(정조 15년) 조선에서 일어난 '최초의 공식적인 천주교 탄압 사건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던 조선 사회에 '조상 제사 거부'라는 거대한 사상적 충격을 던진 사건

베이징 교구의 제사 금지령: 1790년, 청나라 베이징 교구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은 조상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교황청의 명령을 하달

윤지충의 신주 소각: 1791년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진산의 선비 윤지충(바오로)이 모친상을 당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과 교리에 따라 집안의 신주(위패)를 불태워 땅에 묻고, 유교식 제사를 거부한 채 천주교식으로 장례

조정의 발칵 뒤집힘: 이 행동이 외사촌인 권상연(야고보)의 동조 아래 행해졌다는 사실이 친척들과 지역 유림을 통해 조정에 보고되면서 국가적인 문제로 비화

조선 최초의 순교: 조정은 유교적 도덕률(삼강오륜)을 정면으로 위배한 이들을 체포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부모도 없고 임금도 없는(無父無君) 종교를 믿는다"는 죄명으로 전주 전동성당 자리가 있는 풍남문 밖에서 참수형.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초의 공식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정조의 관대한 온건 처결: 당시 노론 벽파 세력은 이 사건을 빌미로 천주교 신자가 많았던 남인(시파)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려 했다. 정조는 주동자인 윤지충과 권상연 두 사람만 처형하고, 관련자였던 권일신을 유배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서둘러 매듭

천주교 교세의 변화: 신해박해 이후 탄압을 두려워한 많은 양반층 신자들이 신앙을 포기하는 '배교'를 선택

그 빈자리를 중인, 상민, 여성 등 평민 계층이 메우기 시작하면서 천주교는 점차 민중 종교의 성격을 띠며 음지에서 더욱 확산

이는 정조 사후 순조가 즉위하자마자 남인 세력을 전멸시킨 1801년 신유박해라는 대재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상도 / 혈의 (순조)

순조(純祖) 시대는 정조의 갑작스러운 승하 이후, 어린 왕을 대신한 세도정치와 천주교 박해, 민란 등으로 조선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정조의 차남으로 11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습니다. 즉위 초에는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에 시달렸고, 이후에는 장인인 김조순 일가의 세도정치에 휘둘렸습니다.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은 조선 후기 순조 시대의 외척이자, 60년간 이어진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막을 올린 핵심 인물

1. 정조의 신임과 세자의 장인이 된 배경
  • 명문가 출신의 천재: 조선 최고의 노론 명문가인 안동 김씨(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한 뒤 규장각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정조는 그의 뛰어난 학식뿐만 아니라 온건하고 치우치지 않는 정치적 성향을 매우 아꼈습니다.
  • 정조의 고육지책: 정조는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자 11세에 불과한 세자(훗날의 순조)의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정조는 영조 때처럼 외척이 왕을 쥐고 흔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도리어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성품이 올바른 김조순의 딸(순원왕후)을 세자빈으로 직접 간택했습니다. 외척의 힘을 빌려 세자를 보호하려 했던 정조의 선택이었습니다
2. '겸손과 처세'로 권력의 정점에 서다 [1]
  • 정순왕후 사후 실권 장악: 정조 사후 수렴청정을 하며 남인과 시파 세력을 숙청했던 정순왕후 김씨가 1805년 세상을 떠나자,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이 본격적으로 조정의 실권을 잡게 됩니다.
  • 철저한 가짜 2인자 코스프레: 흔히 권력을 잡은 외척들은 높은 벼슬을 탐하기 마련이지만, 김조순은 영의정이나 좌의정 같은 고위 관직을 사양하며 낮은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정적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는 '겸양의 처세'를 펼쳐 당대에는 왕실을 섬기는 '군자'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 막후 정치와 가문의 독점: 본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그의 아들들(김유근, 김좌근 등)과 안동 김씨 일가족이 요직을 독점하도록 조율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왕권은 무력화되고 특정 가문이 국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세도정치의 관례가 확립

무협 소설을 쓴 소설광: 대정치가였던 김조순은 의외로 엄청난 소설 마니아였습니다. 젊은 시절 예문관에서 숙직하다 연애 소설을 읽다 정조에게 걸려 반성문을 쓴 일화가 유명하며, 직접 고전 무협 소설의 초기 형태인 《오대검협전》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온건한 태도: 정순왕후가 주도한 신유박해(1801년)와 달리, 김조순이 집권한 이후에는 천주교 박해가 상당히 누그러졌습니다. 그의 장남 김유근은 말년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가문 자체가 서학에 비교적 관대했습니다.

호화 별장 '옥호정': 현재 서울 종로구 삼청동(청와대 인근) 자리에 최고의 명승지로 꼽히는 대저택 옥호정을 지어 말년을 보냈는데, 이는 막후에서 그가 누렸던 위세와 부

 

 

 

 

효명세자 (이영, 1809~1830): 순조의 아들이자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박보검의 실존 모델입니다. 대리청정을 통해 안동 김씨를 견제하고 왕권을 회복하려 했던 천재적인 세자였으나, 대리청정 3년 만에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조선의 마지막 개혁 불꽃이 꺼지게 되었습니다. (급사)

순조가 아들 효명세자에게 18세라는 이른 나이에 대리청정을 맡긴 가장 큰 이유는 외척 세력인 안동 김씨의 독주를 막고 왕권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박해와 유배 속에서 꽃핀 학자·실학자
  • 정약용 (1762~1836) - 천주교: 정조의 총애를 받던 최고의 실학자였으나, 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로 몰려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18년간의 긴 유배 생활 동안 실망하지 않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불후의 명저를 남기며 실학을 집대성했습니다.
  • 정약전 (1758~1816) - 천주교: 정약용의 둘째 형으로,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지에서 바다 생태계에 관심을 두고 현지 어부(창대)의 도움을 받아 조선 최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인 《자산어보》를 집필했습니다. (영화 《자산어보》의 주인공)
  • 김정희 (추사 김정희, 1786~1856): 순조 시대에 활동한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문인화가, 실학자입니다.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했으며, 순조의 명으로 북한산 비석이 신라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는 등 금석학에서도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홍경래 (1771~1812): 순조 11년(1811년) 발생한 '홍경래의 난'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평안도(서북 지역) 사람들에 대한 조정의 극심한 차별과 세도정치 하의 탐관오리들의 수탈에 저항하여 농민, 광산 노동자 등을 이끌고 민란을 일으켰습니다. 청천강 이북을 한때 장악하며 조선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흥부 / 대동여도 / 탄생  (헌종)

조선의 제24대 임금인 헌종(憲宗, 1827~1849)은 향년 22세(만 21세, 향년 개념으로는 23세)의 아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뚜렷하게 단명한 왕

8세의 즉위

14년 7개월의 재위: 워낙 일찍 죽어 재위 기간이 짧을 것 같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기 때문에 약 15년 동안 왕위를 지켰습니다. 초기 7년은 할머니 순원왕후(안동 김씨)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15세부터 친정(직접 정치)을 시작

 

 

 

 

 

 

 

 

 

 

 

 

 

 

철인왕후 (철종 - 강화도령)

조선의 제25대 국왕인 철종(哲宗, 1831~1864) 역시 향년 33세(만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뚜렷하게 단명한 왕

정치적 무력감과 자포자기식 삶 (주색 침닉)

허수아비 왕의 슬픔: 학문적 기반이 전혀 없던 철종은 즉위 후 안동 김씨 세력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사실상 아무런 권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개혁의 좌절: 1862년 전국적인 민란(임술농민봉기)이 일어나자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하는 등 나름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세도가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3개월 만에 무산

술과 여색으로 도피: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에 빠진 철종은 재위 후반기부터 정사를 멀리한 채 술과 여색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과도한 음주와 방탕한 생활은 원래 약해져 있던 그의 건강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결정타

후사의 전멸: 중전인 철인왕후가 낳은 원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자식들이 뼈아프게도 백일을 넘기지 못하거나 7~9세 이전에 모두 요절

유일한 생존자의 비극: 오직 서녀인 영혜옹주 한 명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으나, 그녀 역시 훗날 자식 없이 일찍 사망

 

 

 

안동 김씨의 몰락과 고종의 즉위: 철종이 숨을 거두자마자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신정왕후 조씨(헌종의 어머니)가 재빨리 움직여 안동 김씨를 배제하고 흥선군의 둘째 아들인 명복(고종)을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올렸습니다.

이로써 60년간 이어진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막을 내리고 흥선대원군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순원왕후 김씨 (1789~1857): 순조의 왕비이자 철종을 왕위에 앉힌 인물입니다.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친정인 안동 김씨 가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화도에 있던 철종을 데려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두 번의 수렴청정(순조 대, 철종 대)을 행사한 막강한 대비

 

 

  • 유계춘 (劉季春, ?~1862): 철종 13년(1862년) 조선 전역을 뒤흔든 '임술농민봉기(진주민란)'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극심한 수탈에 참다못해 농민들을 이끌고 관아를 습격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민란이 전국 70여 개 지역으로 번져나가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 박규수 (朴珪壽, 1807~1877):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 진주민란이 터지자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안핵사(조정 임시 관리)로 파견되었습니다.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후 세도정치의 폐단인 '삼정의 문란'을 개혁해야 한다고 순조와 철종에게 강력히 건의했던 깨어있는 관료이자, 훗날 개화파의 정신적 지주가 됩니다.
  • 최제우 (崔濟愚, 1824~1864): 철종 11년(1860년), 서양의 사상(서학)과 부패한 지배층에 맞서 "사람이 곧 한울(하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민족 종교인 '동학(東學)'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으나, 철종 말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결국 대구에서 처형당했습니다.

 

 

 

 

 

 

 

 

 

 

 

 

닥터진 (고종)

 

  • 흥선군 이하응 (興선대원군, 1820~1898): 철종 시대에 안동 김씨의 살벌한 감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시정잡배들과 어울리며 '상갓집 개'를 자처했던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몰락한 왕족처럼 행동했으나 속으로는 칼을 갈며, 철종 사후 자신의 아들(고종)을 왕위에 올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 신정왕후 조씨 (조대비, 1808~1890): 효명세자의 아내이자 헌종의 어머니입니다. 안동 김씨의 세도에 밀려 풍양 조씨 가문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은밀히 흥선군과 손을 잡고 철종의 사후 대권을 도모하여 결국 안동 김씨를 무너뜨리는 막후의 승부사였습니다.

 

 

  

명성황후 - 고종부읜 / 대원군이 시아버지.

명성황후와의 갈등 과정

1단계: 동맹에서 정적으로 (1866년~1873년)

간택: 흥선대원군은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의지할 곳 없는 고아였던 민치록의 딸(명성황후)을 고종의 비로 간택

갈등의 시초: 명성황후가 낳은 첫 아들이 항문 폐쇄증으로 사흘 만에 요절하자, 대원군이 후궁(영보당 이씨)의 아들인 완화군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틀어졌습니다.

하야 기획: 명성황후는 최익현 등 유림 세력과 손을 잡고 대원군의 실정을 비판 상소하게 만들어 1873년 흥선대원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고종의 친정 선포)

 

2단계: 임오군란과 권력의 시소게임 (1882년)

군란의 배후: 구식 군인들이 차별에 반발해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흥선대원군은 군인들을 장악하고 명성황후를 궁궐 밖으로 쫓아내며 권력을 일시적으로 재장악

청나라의 개입: 명성황후가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청나라 군대가 개입하면서 흥선대원군은 톈진으로 납치·압송되었습니다. 명성황후는 궁으로 복귀

 

3단계: 갑오개혁과 일제의 이용 (1894년)

강제 복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청나라에서 돌아와 있던 흥선대원군을 다시 정계로 복귀

친러 정책에 대한 반발: 대원군은 명성황후의 친러시아 정책을 견제하려는 일본의 방패막이로 이용되며 고종과 명성황후를 압박

 

4단계: 을미사변과 파국 (1895년)

비극적 결말: 친러파를 등용해 일본을 몰아내려던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해,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도한 을미사변이 발생

 

흥선대원군 - 정치적 고립과 유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사실상 자택에 갇히는 가택 연금 상태로 말년을 보냈습니다. 외부인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채 철저히 감시당했습니다.

아들 고종과의 깊은 갈등: 명성황후와의 오랜 권력 투쟁 과정에서 아들 고종과도 원수

 

덕해옹주

배경: 고종의 말년(일제강점기 직전)부터 대한제국 멸망 이후를 다룹니다.

내용: 고종(배우 백윤식)이 가장 아꼈던 막내딸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팩션 영화입니다. 초반부에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당하는 설을 비중 있게 묘사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새벽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황제가 친일 세력의 감시를 피해 조선 궁궐을 탈출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

'고종 커피 독살 사건'의 공식 명칭은 김홍륙 독다(毒茶) 사건으로, 1898년 9월 11일(음력 7월 26일)에 발생한 황제 암살 미수 사건

       - 순종의 중독: 그러나 커피 맛을 잘 몰랐던 황태자(순종)는 그대로 몇 모금을 크게 들이켰습니다.

          참혹한 결과: 순종은 즉시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보며 쓰러졌고 사경을 헤맸습니다. 목숨은 건졌으나 이 사건의 충격으로

                              이빨이 18개나 빠져 평생 틀니를 꼈으며, 평생 몸이 약하고 지능 발달과 생식 기능에 장애를 겪는 등의

                               심각한 영구적 후유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고종황제는 1905년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을 겪었고, 이에 저항하다가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

뒤를 이은 순종황제 때 결국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형식적인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사우치 마사타케가 비밀리에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을 체결

1910년 8월 29일 (조약 공포 및 멸망): 일제가 조약을 대외적으로 공식 발표하면서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을 국가의 치욕스러운 날이라는 뜻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

 

 

 

 

 

 

물론, 한나라를 먹는게 쉬운게 아니다. 

   일본과 러시아는 조선을 두고 러일전쟁을 벌였고,  청나라와 일본도 조선을 두고 청일전쟁을 벌였다.

   그런데, 일본이 두나라 모두 작살냈다.

   왜? 일본 뒤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에서 들여온 신식 무기들은 러시아와 청나라를 쳐발랐다. 

   그래서, 일본은 제국주의로 성장하여 다른 나라를 침탈하고 재물을 빼앗아서, 미국에 가져다 바쳤다. 즉, 무기구매 자금으로

    식민지수탈금을 모두 가져다 바쳤다.

  미국은 이것이 빨리 안끝나길 원하였기 때문에, 일본이 중국을 침략할때, 중국에도 무기를 팔았다.

  그래서, 소모전 양상으로 가면서, 미국만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를 알게된 일본은 미국과 헤어질 결심을 준비하게 되고, 전쟁준비를 하게 되면서, 미국도 눈치를 채고 군사물품 수출통제를 건다. 제일 핵심은 기름이었다. 

   때문에, 일본은 기름을 자체적으로 얻고자 만주를 그렇게나 파헤쳤지만, 기름을 얻을수 없었다.

    (실제 만주에 기름이 있었다. 다만 깊이 있어서, 당시 기술로 못파냈다)

    그래서, 중동으로 직접 가려는 루트를 찾아, 동남아를 침략하여 식민화 한다. 대만, 베트남 등. 

    그런데, 필리핀을 지나가야 하는데, 필리핀이 미국 식민지였다.

    그래서, 결국, 일본은 필리핀을 공격해버리고, 동시에 진주만도 폭격한다. 

     이게 일본이 미국을 2차대전에 참전시키게 된 모습이다.

 

청일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9UTvNyIPUt4

 

리일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mvP7k5T2FoQ

 

 

 

 

 

 

독립운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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