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INDEX 2 - 설명편
<고조선>


한나라 7대왕 한무제때, 고조선은 멸망당한다.
그리고, 고조선 유민들을 한나라 노예로 끌려다닌다.
얼마 안 지나서, 한나라도 국운이 거의 다해서, 삼국지의 시대가 오기때문에, 곧 십상시들이 난리를 칠거다.
그래서, 한나라 국력이 쇠하여 지므로, 여러 나라들이 조선반도에 들어서게 된다.


한나라에 망한 고조선. 그 후예들이 다시 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그린다.
고구려와 고구려에서 나온 백제의 건국 배경을 알 수가 있다.
주몽은 고조선 유민들을 모아서, 고구려를 세우게 되고, 고조선의 뒤를 잇게 된다.
주몽 다음왕 유리왕은 소서노와 배다른 아들이기 때문에, 소서노는 아들들을 데리고 내려가서, 마한땅에 백제를 세우게 된다.
그 배경에는 고구려에서 가져간 강력한 철기가 바탕이 된다.
<선덕여왕> / 계백 / 황산벌

삼국은 서로 각축을 벌이며, 통일을 꿈꾸게 된다.
우리가 삼국시대일때, 중국도 삼국지의 시대이다. 그리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나서, 고구려를 쳐들어온다.



드라마 연개소문은 연개소문 일대기 드라마이며, 연개소문이 있을때, 두 명장이 있으니, 다른 하나가 을지문덕이다. 정확히는 3명의 명장이 있었다. 양만춘 장군이다.
어쨋든, 중국을 통일한 수양제가 바로 고구려도 먹겠다고 왔지만, 을지문덕 장군께서 살수대첩 수공으로 100만대군을 쓸어버리고,
수나라는 계속 찝적대가가 나라가 망한다.
그리고 중국은 바로 당나라가 들어서게 된다.
물론, 그 다음 당나라가 들어서자마자, 당태종 이세민은 또 고구려를 침략한다.
이번에는 양만춘과 연개소문이 이를 격퇴하여, 당태종은 애꾸가 되어 돌아가다가, 가서 화병으로 죽는다.

그리고 나서, 중국은 당태종의 부인이 황제가 되어, 측천무후가 된다.
신라 역시 통일을 꿈꾸게 되는데, 마지막때 등장하는 인물들이 선덕여왕, 장군 김유신, 그리고 김춘추가 나온다.
김춘추가 외교술로 당나라를 연합군으로 한다.
백제에는 계백장군이 있었고, 황산벌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통일신라시대 - 장보고.


통일신라는 자신의 힘으로 통일을 이룬게 아니라서, 정치체제나 지방세력들과의 교류나 이런게 다 정비가 안되었다.
결국, 왕실이 엉망진창으로 되면서, 지방호족들이 힘을 가지게 되고, 독립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eLgn1OZ8Q&t=160s
여기서 태조 왕건으로 이어지지만,
고구려가 망할당시로 와서, 발해가 생기는 장면을 보면.
통일신라와 고구려의 멸망, 발해건국


측천무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발해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태조왕건 - 후삼국시대


산적패들을 규합하여, 군대를 조직하고, 나라를 세운 궁예와 그 지역에 상업교역 부호인 왕씨가문의 왕건이 해군에 능했기에, 궁예 밑으로 들어간다. 후백제는 견훤이라는 군인이 군대조직을 가지게 되어, 나라를 세우고, 통일신라는 옛 영역만을 지키게 된다.
왕건은 궁예의 실정을 통해서, 그 부하들의 신임을 얻게되고, 쿠테타에 성공하여 고려의 왕이되고, 후백제 견훤이 아들의 반란으로 왕건에게 망명하게 되고, 자신이 직접 군대를 끌고가서 후백제를 항복시킨다.
또한, 신라 역시, 신라왕이 왕건이 지배지를 그대로 가지게 하고, 신하로서 대우한다는 소식에 바로 신하로 들어가 신라의 지배권만 가진게 된다.
이게 문제점들이, 각 지방 호족들이 서로 왕건 밑으로 가서, 스스로 신하가 되고, 각 지역 통치권을 그대로 가지게 되었으니. 왕권이 약할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호족들은 전부다 자기 딸들을 왕건에게 시집보내어, 자신의 지위를 강력하게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부인들이 29명이고, 아들이 25명 공주가 9명이다.
이들이 모두 배다른 형제이니. 서로 왕위다툼을 할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고려초기 - 달의 여인
그래서, 이 복잡한 왕자들과의 난리를 그린 드라마가 달의 여인이다.



고려 태조 왕건 사후 발생한 왕위 쟁탈전은 왕건의 셋째 아들인 왕요(정종)와 넷째 아들인 왕소(광종)가 이복동생 왕태 등을 지지하던 외척 왕규를 제거하며 일으켰다.
혜종 즉위와 위기: 왕건의 맏아들인 혜종이 즉위했으나 외가(나주 호족)의 세력이 약해 호족들의 견제를 받았습니다.(나주부인)
왕규의 난(945년): 혜종을 몰아내고 다른 왕자(광주원군)를 왕위에 올리려던 외척 왕규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왕요와 왕소의 난 평정: 이때 유력한 왕위 후보였던 셋째 왕요와 넷째 왕소 형제가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들어와 왕규를 처단하고 실권을 장악
천추태후 / 고려 거란 전쟁
천추태후는 6대 성종의 여동생이다.
5대왕 경종의 부인이 되어, 목종을 낳았다. 경종이 일찍 죽게 되면서, 오빠인 성종이 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1차 거란 침략을 막고는 병으로 일찍 죽었다.
7대 목종의 어머니 (최전성기): 오빠 성종이 서거한 후, 18세가 된 아들 목종이 제7대 왕으로 즉위하자 태후로서 12년간 대리청정(섭정)을 하며 고려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
거란은 송나라를 칠때, 고려가 뒷통수를 치지않도록 하는게 중요했다. 그래서, 지형이 험하고 다스리기 어려운 강동 6주를 떼어주고, 평화를 맺게 된다. 이 말도 안되는 이상한 외교를 성종과 서희가 해낸다.
이때 지도를 보면, 발해가 망해있는데, 백두산이 터졌다. ㅡ.ㅡ;
그래서, 발해 유민들은 고려에 들어오게 된다.



거란은 고려를 점령하기 위해, 2차 침입과 3차 침입을 강행한다. - 이때가 8대왕 현종이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 천추태후와 목종은 강조의 정변에서 죽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무종 18대 왕때에, 무신들이 난을 일으키면서, 막부정부를 세우게 된다.
즉, 왕은 실권을 모두 뺴앗기고, 장군이 막부를 세워, 정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앞선 거란족 침략을, 서희-문신, 강감찬-문신. 등 문신들이 공을 많이 세우게 되면서, 무신들이 계속 무시당하고 찬밥신세가 되어, 결국 난을 일으키게 된다.
무인시대 / 무신


이 무인들이 정부를 세울때, 이름이 중방, 교정도감, .. 이런 식의 이름을 만들었다.
드라마 무신은 최충헌부터 김준까지이다.
이때는 몽골이 쳐들어오고, 삼별초 별동대를 만들어 방어를 한다.


김준과 고려 24대왕 원종은 극렬하게 대립하였는데,
가장 격렬하게 대립한 원인은 몽골(원나라)과의 관계 및 개경 환도(강화도에서 개성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는 것) 문제
원종의 친몽 정책: 제24대 국왕 원종은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강화도에서 나가(출륙) 옛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가 왕권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김준의 격렬한 반대: 김준은 개경으로 돌아가면 무신들의 군사적 기반이 무너지고, 몽골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원종의 개경 환도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며 왕실을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몽골의 압박과 고립: 몽골은 고려 왕실을 통해 김준에게 몽골 조정으로 입조(직접 찾아와 인사를 드림)할 것을 요구했으나 김준은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계속할 뜻을 비췄습니다
임연의 배신과 암살: 김준의 독재와 무리한 대몽 강경책에 불안을 느낀 국왕 원종은 김준의 양아들이자 측근이었던 무신 임연을 포섭했습니다
최후: 1268년 12월, 임연은 군사를 일으켜 양아버지인 김준과 그의 일파를 모두 숙청(암살)했습니다
이은 임연, 임유무 역시 정권을 내놓지 않다가, 1270년 임유무가 처형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100년 만에 무신정권이 종식되고 고려 국왕에게 권력이 돌아가게(개경 환도) 됩니다
이제 몽골과 화친하여, 황제가 아닌 몽골의 부마국, 사위국으로, 왕으로서 이름하게 된다. 그래서, 충열왕부터 공양왕까지 모두 왕이다.
기황후 - 28.충혜왕 / 쌍화점,신의 - 31.공민왕



27대 충숙왕 복위기 ~ 28대 충혜왕 (공녀 차출과 후궁 책봉): 기황후는 고려 말기 원나라에 공녀로 보내졌습니다. 이후 원나라 혜종(순제)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았고, 1340년경 제2황후의 자리에 오르며 원나라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
충목왕 ~ 충정왕 (기씨 일가의 횡포): 기황후가 원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자, 고려에 있던 그녀의 오빠 기철을 비롯한 기씨 가문(권문세족)이 원나라의 배경을 믿고 고려 국왕을 무시하며 온갖 부정부패와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31. 공민왕 (정면충돌과 기씨 일가 숙청): 1351년 즉위한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원 자주 개혁 정치를 펼쳤습니다. 공민왕은 왕권을 위협하던 기황후의 오빠 기철 일파를 반역죄로 몰아 한날한시에 처형(1356년)했습니다
그 처형내용이 신의이다. 여기서 최영장군이 나온다.
쌍화점 - 공민왕 암살사건
'공민왕 사건(1374년)'은 공민왕이 자신의 미소년 호위대인 '자제위' 청년들에게 왕비를 강제로 범하게 했다가, 임신 사실이 탄로 나자 역으로 그들에게 처참하게 암살당한 사건
깊은 상심: 공민왕은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원나라 출신의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후사 문제: 공민왕에게는 정식 왕비(정비, 익비 등)들이 있었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왕실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하자 왕은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자제위 설치: 공민왕은 명문가 출신의 외모가 뛰어난 젊은 청년들을 모아 자제위(子弟衛)라는 친위대를 만들고, 이들과 동성애를 즐기며 늘 곁에 두었습니다.
왕비들을 범하라는 어명: 공민왕은 자제위 청년 중 자신이 가장 총애하던 홍륜, 한안 등에게 후궁인 익비(益妃)와 동침하여 아이를 가지라고 강요했습니다.
익비의 임신: 처음에는 익비도, 홍륜도 왕의 명령을 거부하며 두려워했으나 공민왕이 칼을 뽑아 들고 협박하자 결국 여러 차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1374년 9월, 마침내 익비가 홍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반역자들의 처형: 다음 날 아침 왕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재상 이인임의 끈질긴 추궁 끝에 최만생의 옷에 묻은 피가 단서가 되어 범행이 발각되었습니다. 홍륜, 최만생을 비롯한 자제위 일파는 모두 체포되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능지처참)에 처해졌습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이름들은, 최영, 홍륜, 등이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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